정부 비대면 진료 대상 넓히기로 하자 안전성 우려 재점화

고혈압과 당뇨를 함께 관리하는 직장인 김모 씨(45)는 매달 병원을 찾는 일이 부담스럽다. 진료는 5분이면 끝나지만 이동과 대기에 반나절이 든다. 회사에 반차를 내고 병원에 다녀오는 날이면 업무 공백을 메우느라 저녁까지 시달리기 일쑤다. 그런 김 씨에게 정부가 추진하는 원격의료 시범사업 확대 소식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정작 의료 현장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만성질환자와 재진 환자를 중심으로 운영해온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의 대상과 범위를 넓히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초진 환자에 대한 비대면 진료 허용 범위를 일부 확대하고, 참여 의료기관과 약국 수를 늘려 접근성을 높이겠다는 게 골자다. 복지부는 특히 거동이 불편한 고령층과 도서·산간 지역 주민, 만성질환으로 정기적인 관리가 필요한 환자층의 의료 접근성을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에 참여한 의료기관은 전체 의료기관 수에 비해 크게 적은 수준이며, 이 가운데 실제로 매달 비대면 진료를 시행하는 곳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비대면 진료는 원칙적으로 재진 환자를 대상으로 하며, 초진은 응급 상황이나 특정 조건을 충족할 때만 예외적으로 허용돼 왔다. 정부는 코로나19 유행 기간 한시적으로 전면 허용했던 비대면 진료를 팬데믹 이후 제한적 시범사업 형태로 축소 운영해왔는데, 이번 확대 방침은 그 범위를 다시 넓히는 방향으로 해석된다. 복지부는 구체적인 시행 시기와 세부 기준을 이달 중 발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복지부는 아울러 참여 의료기관에 대한 정기 점검과 처방 내역 모니터링 체계도 함께 정비하겠다는 입장이다.

의료계는 즉각 우려를 표명했다. 의사 단체 관계자는 "비대면 진료는 대면 진료를 보완하는 수단이어야지 대체하는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며 "초진 환자를 화면만으로 진단하는 데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진 가능성과 함께 약물 오남용, 특정 질환에 대한 부적절한 처방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개원의는 "만성질환 환자라도 상태가 갑자기 악화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비대면 진료만으로는 이를 놓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 개원의는 "화면으로는 부종이나 피부색 변화, 미세한 신경학적 이상을 확인하기 어렵다"며 "특히 고령 환자일수록 대면 진찰의 중요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반면 환자단체 쪽에서는 의료 접근성 개선이라는 측면에서 확대 방침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환자단체 관계자는 "지방에 거주하거나 거동이 불편한 환자들에게 비대면 진료는 실질적인 의료 공백을 메우는 수단"이라며 "안전장치를 마련하되 제도 자체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환자 입장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특히 만성질환 관리처럼 정기적인 상담과 처방이 필요한 경우, 매번 병원을 방문하기 어려운 직장인이나 돌봄 부담이 있는 가족에게는 비대면 진료가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도서 지역에 거주하는 박모 씨(68)는 "가까운 내과에 가려면 배를 타고 나가야 해서 반나절이 걸린다"며 "비대면으로 약 처방이라도 받을 수 있으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측의 입장이 엇갈리는 지점은 결국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라는 범위의 문제로 좁혀진다. 의료계는 초진 확대와 참여 기관 증가가 진료의 질적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반면, 환자단체와 일부 산업계는 시범사업 취지가 접근성 개선에 있는 만큼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운영하면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본다. 실제로 복지부가 운영 중인 시범사업 참여율은 초기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나온 바 있는데, 그 원인으로 좁은 적용 대상과 복잡한 절차가 거론돼 왔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내놓은 관련 조사에서도 비대면 진료 이용 경험이 있는 환자 상당수가 재이용 의사를 밝혔지만, 정작 이용 대상 조건이 까다로워 신청 단계에서 포기한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전문가들은 제도 확대에 앞서 안전망 정비가 우선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 의료정책 연구위원은 "비대면 진료의 편의성과 안전성은 상충하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설계해야 하는 문제"라며 "처방 이력 관리 시스템 강화, 특정 질환군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 마련이 병행돼야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약사회 관계자는 "비대면 진료 이후 처방약을 받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배송 오류나 복약 지도 공백 문제도 함께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특히 노년층 환자의 경우 복약 방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약을 받는 사례가 있어 비대면 복약 지도 방식을 별도로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의료계 내부에서도 온도차가 있다. 대도시 대형병원 중심으로는 초진 확대에 신중한 입장이 우세한 반면, 만성질환자를 꾸준히 관리해온 일부 개원가에서는 재진 환자에 한해서라도 절차를 간소화해달라는 요구가 나온다. 당뇨나 고혈압처럼 상태 변화가 비교적 완만한 질환을 오래 관리해온 환자의 경우, 매번 대면 진료를 고집하기보다 비대면과 대면을 병행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한 내과 전문의는 "안정적으로 관리되는 만성질환자라면 3개월에 한 번은 반드시 대면으로 채혈과 검사를 받고, 나머지 달은 비대면으로 처방을 잇는 방식이 현실적인 절충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정부는 이번 확대 방침이 전면 허용이 아니라 단계적 시범사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시범사업 결과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며 안전성이 확인된 항목부터 순차적으로 넓혀가겠다"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질환군과 연령대부터 초진 확대를 적용할지, 참여 의료기관의 자격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복지부는 이 과정에서 의료계와 환자단체, 약사회 등 이해관계자 간담회를 순차적으로 열어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덧붙였다.

만성질환자에게 비대면 진료는 일상적인 관리 수단이 될 수 있지만, 증상 변화가 있을 때는 반드시 대면 진료나 전문의 상담을 병행해야 한다는 게 의료 현장의 공통된 조언이다. 정부의 세부 시행 방안 발표를 앞두고 의료계와 환자단체, 관련 산업계의 의견 수렴 절차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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