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창업가들이 만든 상권 변화, 임대료 지원이 물꼬 텄다

평일 오후인데도 시장 골목 한쪽은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낡은 간판 사이로 새로 칠한 파스텔톤 외벽과 손글씨 메뉴판이 눈에 띈다. 3년 전만 해도 셔터가 절반 넘게 내려가 있던 골목이었다. 지금은 젊은 상인들이 만든 수제 디저트 가게와 로스터리 카페, 편집숍이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이곳에서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김모 씨(34)는 서울 소재 대기업 마케팅 부서에서 5년을 일하다 퇴사했다. 그는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다들 말렸다"며 "그래도 내 손으로 만든 것을 팔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김 씨는 상가 임대료가 서울 도심 대비 훨씬 저렴하다는 점, 유동인구가 이미 형성돼 있다는 점을 창업 이유로 꼽았다. 그는 "시장 상인회에서 비어 있던 점포를 소개해줬고 초기 인테리어 비용 일부를 지원받았다"고 설명했다.

이런 사례는 특정 지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전통시장 내 빈 점포를 청년 창업 공간으로 전환하는 사업을 여러 해째 이어오고 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역시 청년 상인의 정착을 돕기 위해 초기 임대료와 시설 개선비를 일부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 같은 지원책이 청년층의 진입 장벽을 낮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영업 관련 조사에서도 20~30대 창업자 비중이 전통시장 인근 상권을 중심으로 소폭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임대료가 저렴한 노후 상권일수록 청년 창업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경향이 확인됐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초기 자본이 부족한 청년층이 위험 부담이 낮은 시장 상권을 선택하는 흐름으로 해석한다. 실제로 청년 상인 다수는 대출과 저축을 합쳐 수천만 원 규모의 초기 자금으로 창업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소상공인 관련 협회 관계자는 "전통시장의 고질적인 문제는 노후한 시설과 고령화한 상인 구성이었다"며 "청년 상인이 유입되면서 상품 구성과 마케팅 방식이 달라지고, 그 변화가 기존 상인들에게도 자극이 되는 선순환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일부 시장은 청년 상인 유입 이후에도 고객층 확대로 이어지지 못한 채 임대료 부담만 남는 경우도 있다"며 지역별 편차가 크다는 점을 짚었다.

청년 상인들이 시장을 택하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수제 캔들 공방을 운영하는 이모 씨(29)는 "온라인 쇼핑몰만으로는 브랜드를 알리는 데 한계가 있었다"며 "오프라인 매장을 통해 직접 손님과 대화하고 반응을 확인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이라는 공간이 갖는 정서적 친밀감도 창업지로 선택한 배경이라고 덧붙였다. 이 씨는 "어르신 상인들이 먼저 말을 걸어주시고 손님을 소개해주기도 한다"며 "혼자 매장을 운영하는 것과는 다른 공동체적 분위기가 있다"고 전했다.

이 씨는 창업 초기 재고 관리와 세무 신고 방식에 익숙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장부를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몰라 첫 부가가치세 신고 때 애를 먹었다"며 "시장 상인회에서 연결해준 세무사 무료 상담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런 경험은 청년 창업 지원이 단순히 자금 지원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로컬 크리에이터라는 개념도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 지역의 특색을 살린 콘텐츠나 상품을 기획해 상권 전체의 매력을 높이는 방식이다. 한 지역경제 연구위원은 "청년 상인의 유입은 단순히 개별 점포의 매출 문제가 아니라 지역 상권 전체의 이미지와 방문 목적을 바꾸는 효과가 있다"며 "시장이 단순히 물건을 사는 곳이 아니라 경험하고 머무는 공간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청년 상인들이 만든 콘텐츠가 소셜미디어를 통해 확산되면서 시장을 찾는 방문객의 연령대 자체가 낮아지는 현상도 관찰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일부 전통시장은 주말이면 20~30대 방문객 비중이 절반을 넘어서는 곳도 생겼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사진을 찍어 공유할 수 있는 포토존이나 야간 조명 시설을 갖춘 시장일수록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분석도 나온다.

물론 도전이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창업 초기 매출이 안정되기까지 걸리는 시간, 기존 상인들과의 관계 형성, 낡은 건물의 시설 문제 등은 여전히 청년 상인들이 겪는 어려움으로 꼽힌다. 카페를 운영하는 박모 씨(37)는 "여름철에는 냉방 시설이 부족해 손님들이 오래 머물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며 "시장 전체 차원의 시설 개선이 함께 이뤄져야 개별 점포의 노력도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씨는 또 "겨울철 난방 문제도 비슷하다"며 "개별 점포가 제각각 냉난방 기기를 들이는 것보다 시장 차원에서 공동으로 설비를 개선하는 편이 비용 측면에서도 효율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인근 상인들과 함께 시설 개선을 요청하는 건의서를 상인회에 제출한 적도 있다고 전했다.

전통시장을 관할하는 지자체들도 청년 상인 유치와 시설 현대화를 함께 추진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조정하고 있다. 아케이드 설치, 주차장 확충, 화장실 개선 등 기본 인프라 정비가 병행되는 시장일수록 청년 창업 생존율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관계자는 "청년 상인 지원 사업의 핵심은 초기 정착 비용을 낮춰주는 것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 전체의 매력도를 높이는 인프라 투자가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시장 상인회 차원의 협업도 늘고 있다. 기존 상인과 청년 상인이 함께 여는 야시장이나 공동 할인 행사, 소셜미디어 홍보 협업 등이 대표적이다. 한 시장 상인회 관계자는 "처음에는 세대 차이로 인한 어색함이 있었지만, 함께 행사를 치르면서 서로의 강점을 이해하게 됐다"며 "청년 상인들이 만든 온라인 홍보 콘텐츠 덕분에 젊은 방문객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예전에는 상인회 회의라고 하면 매출이나 임대료 문제만 다뤘는데 요즘은 콘텐츠 기획이나 행사 아이디어를 함께 논의하는 시간이 늘었다"고 말했다. 그는 "청년 상인들이 제안한 온라인 장보기 서비스나 배달 플랫폼 입점도 기존 상인들 사이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고 전했다. 세대 간 역할 분담이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청년 상인의 정착이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으려면 지속적인 관리와 재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창업 초기 지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경영 컨설팅, 세무·회계 교육, 판로 확대 지원 등이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여러 지자체와 소상공인 지원 기관은 창업 이후 1~2년 차 상인을 대상으로 한 후속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관계자는 "창업 직후보다 오히려 1~2년 차에 경영난을 겪는 사례가 많다"며 "초기 관심이 사그라든 이후에도 꾸준히 매출을 유지할 수 있도록 마케팅 교육과 자금 상담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청년 상인들 간 네트워크를 만들어 정보와 노하우를 공유하도록 돕는 것도 정착률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김 씨는 인터뷰 말미에 "처음에는 하루 매출이 얼마 되지 않아 불안했지만 지금은 단골손님이 생겼다"며 "시장이라는 공간이 주는 사람 사이의 온기가 이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힘"이라고 말했다. 그의 베이커리 앞에는 오늘도 손님들이 줄을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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