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한 아파트에서 8월11일 불이 나 뇌병변 장애를 앓던 60대 모친과 이를 돌보던 아들이 숨졌다. 두 사람은 15층 집에 불이 번지자 대피 과정에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되며 아파트 화단에서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아파트는 1992년 준공된 영구임대주택으로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 규정은 1990년 16층 이상 아파트 중 16층 이상을 대상으로 처음 도입돼 소급 적용을 받지 않았다.
사고 이후 행정안전부와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만든 '지체·뇌병변장애인 화재 재난대응 안전교육자료'가 도마에 올랐다. 이 매뉴얼은 화재 시 계단을 이용해 대피하거나 옥상으로 이동해 구조를 기다리라고 안내하는데, 거동이 불편한 지체·뇌병변장애인이 스스로 실행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수미 활동가는 "휠체어를 타고 혼자 계단을 오르내릴 수도 없고, 문조차 열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매뉴얼의 내용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체 장애인 중 1인 가구 비율은 2023년 기준 26.6%였으며,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2024년 발달장애인 일과 삶 실태조사'에서는 재난 시 소방서에 직접 연락할 수 없다고 응답한 발달장애인이 31.1%에 달했다. 이영주 경일대 소방방재학부 교수는 "영구임대주택같이 취약 계층이 많이 살고, 운영 주체가 국가인 경우에는 특히 시설적 보완이나 안전 확보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이 화재로 목숨을 잃은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5월 광주 북구 아파트에서 50대 시각장애인이 숨졌고, 2024년 4월 인천 서구 아파트에서는 10대 지적장애인이, 같은 해 6월 충북 음성군 컨테이너에서는 60대 청각장애인이, 전남 영광군 주택에서는 지적장애가 있던 초등학생이 각각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행정안전부는 8월16일 연합뉴스에 "화재시 장애인 재난대응 안내서를 현실에 맞게 개선·보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행안부는 계단 대피 지침에 '지원자의 도움을 받아'라는 문구가 없어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고 인정하며, 국립재난안전연구원이 전문가와 관련 단체의 의견을 수렴해 상황별 행동요령을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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