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억원 상당의 무차입 공매도 혐의로 기소된 홍콩상하이은행(HSBC) 홍콩 법인이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았다. 대법원은 매도호가를 제출한 것만으로는 자본시장법상 ‘매도’가 성립하지 않고, 매도호가와 매수호가가 합치돼 실제 매매가 체결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2021년 8월부터 12월까지 호텔신라 등 9개 상장사 주식 31만8781주를 둘러싸고 진행된 사건으로, 무차입 공매도 형사처벌 규정이 도입된 뒤 처음 재판에 넘겨진 사례다. 대법원 2부는 8일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고 HSBC 홍콩법인에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9개 상장사 주식 31만8781주 거래 혐의
HSBC 홍콩법인 트레이더 A씨 등 3명은 2021년 8∼12월 무차입 방식으로 호텔신라를 포함한 9개 상장사 주식 31만8781주를 공매도한 혐의로 2024년 3월 기소됐다. 원문에 기재된 거래 규모는 157억8468만원이다. 검찰은 직원들을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겼고, HSBC 법인은 양벌규정에 따라 함께 기소됐다. 무차입 공매도 규제 위반으로 형사 재판에 넘겨진 것은 이 사건이 처음이었다.
공매도는 주가 하락을 예상할 때 주식을 미리 빌려 판 뒤, 실제 주가가 내려가면 더 싼 가격에 사들여 갚는 거래 방식이다. 국내에서는 주식을 미리 빌려두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무차입 공매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사건에서 다뤄진 쟁점은 매도 주문을 제출한 행위만으로 법이 금지한 무차입 공매도가 성립하는지, 그리고 HSBC 법인에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였다. 대법원은 주문 제출과 실제 매매 체결을 구분해 법 조항을 해석했다.
무차입 공매도 금지는 자본시장법 시행 당시부터 규정돼 있었으며, 2021년 4월 개정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위법 행위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이 신설됐다. 참고 기사에 따르면 당시 법은 위법한 공매도를 하거나 이를 위탁·수탁한 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부당이득액의 3배 이상 5배 이하에 상당하는 벌금형을 두되 벌금 상한을 5억원으로 정했다. 이후 규정이 개정돼 지난해 3월부터 벌금 기준은 부당이득액의 4배 이상 6배 이하로 강화됐다. 이번 사건은 형사처벌 규정이 마련된 뒤 첫 기소 사례로 법원의 판단을 받았다.
주문만으로는 법률상 매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
1심은 HSBC 홍콩법인의 무죄를 선고하면서 무차입 공매도 주문이 제출된 사실과 실제 매도 체결 여부를 나눠 살폈다. 재판부는 주문이 제출됐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주문 제출만으로 실제 매도가 이뤄졌다고 단정할 수 없고 매매 체결이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1심은 “자본시장법에서 무차입 공매도를 금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결제불이행의 위험 때문”이라며 “주문이 제출된 상태만으로는 결제불이행의 위험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재판 과정에서는 HSBC의 거래 시스템과 직원들의 업무 방식도 검토됐다. 1심은 공매도 주문 제출이 매도스왑을 해지하기 위해 은행 시스템에서 자동으로 이뤄졌다고 봤다. 기소된 직원들은 거래 뒤 결제에 부족한 주식이 확인되면 사후 차입을 했다는 점도 판단에 반영됐다. 검찰은 직원들이 무차입 공매도가 가능한 은행 시스템을 알고도 가담했다고 주장했지만, 1심은 직원들이 각 거래가 무차입 공매도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1심은 주문 제출 사실만으로 결제불이행 위험이 발생했다고 볼 수 없으며, 직원들이 규제 위반을 구체적으로 알았다는 점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검찰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2심은 지난해 9월 무죄 판단을 유지했다. 검찰은 다시 상고했으나 대법원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
대법원, 호가 제출과 매매 체결 구별
대법원 2부는 8일 상고심에서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자본시장법의 ‘매도’가 무엇을 뜻하는지 판단하면서 매도호가와 매수호가가 합치돼 매매가 체결된 경우를 기준으로 삼았다. 대법원은 “매도의 사전적 의미와 공매도 관련 조항 전체를 고려할 때 자본시장법상 '매도'는 매도호가와 매수호가가 합치돼 매매체결이 된 경우를 말한다”며 “호가를 제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검찰은 매도 주문 제출 단계도 처벌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대법원은 법률상 매도 행위에 해당하려면 주문 이후 체결이 이뤄져야 한다는 원심의 해석을 받아들였다. 참고 기사에 따르면 대법원은 매매 체결 이전의 호가 제출까지 공매도로 인정하면 미수 행위를 기수 행위와 동일하게 취급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형벌법규를 피고인에게 불리하게 넓혀 해석할 수 없다는 법리도 제시됐다. 이에 따라 거래소에 호가를 제출했다는 사실만으로 자본시장법 위반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대법원은 원심의 무죄 판단을 확정하면서 검찰의 상고를 기각했다. 법인에 대한 양벌규정 적용과 관련해서도 직원들이 무차입 공매도 규제를 위반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법인 차원의 공모 아래 거래했다고 볼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이로써 HSBC 홍콩법인에 대한 형사 재판은 무죄 확정으로 마무리됐다. 다만 대법원 판결은 호가 제출과 매매 체결을 구별해 법률상 ‘매도’의 범위를 제시했고, 주문 제출 단계만을 근거로 처벌할 수 없다는 판단을 담았다.
법인 무죄 확정…직원 3명 재판은 계속
이 사건에서 HSBC 홍콩법인과 트레이더 3명은 함께 기소됐지만, 법인 사건과 직원들의 재판은 따로 진행되고 있다. 직원들은 해외 체류 중이며 공소장과 소환장 송달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아직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법인에 대한 상고심 판단이 확정됐더라도 직원들에 대한 재판은 별도로 남아 있는 셈이다. 따라서 대법원의 이번 무죄 확정은 HSBC 홍콩법인 사건에 관한 판단이며, 직원 3명의 재판 결과를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HSBC를 변호한 법무법인 광장은 판결 뒤 “HSBC가 무차입 공매도 규제 위반으로 인한 형사책임이 있는지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판결”이라며 “무차입 공매도 행위가 어떤 경우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2024년 3월 기소된 뒤 1심과 2심을 거쳐 대법원 판단을 받았다. 법인에 대해서는 무죄가 확정됐고, 해외 체류와 송달 문제로 따로 진행 중인 직원들의 1심 절차는 계속된다.
법인 사건의 판단은 매도 주문이 제출된 시점과 실제 거래가 체결된 시점을 구별하고, 형사책임을 인정하기 위한 증거가 충분한지를 따져 이뤄졌다. 대법원은 검찰의 상고를 기각했으며, 직원 3명에 대한 재판은 아직 진행 중이다. 이들의 1심 절차와 결과는 법인에 대한 확정판결과 별도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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