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과 우크라이나 정부가 북한군 포로의 한국 송환을 협의하면서 외부 공개를 최대한 늦추자는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을 계기로 공개 시점과 비공개 합의의 존재를 둘러싼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윤지완 주우크라이나 대사관 대사대리(공사참사관)는 18일(현지시간) 주폴란드 대사관에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공개 시점은 양측이 논의하지 않았으며 비공개 상태를 오래 유지하자는 의견이 많았다고 밝혔다. 한국 정부는 우크라이나 측에 사과를 요구하고 박기창 주우크라이나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했다. 윤 대사대리는 우크라이나 측의 명확한 사과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하면서도 양국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전했다.
공개 시점 논의 없이 비공개 유지에 뜻 모아
윤 대사대리는 국정감사에서 한국과 우크라이나 정부가 포로 송환을 협의할 당시 공개 시점을 정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언제 공개할지는 서로 전혀 얘기하지 않았고 비공개 상태로 최대한 오래 유지되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말했다. 양측이 송환 사실을 언제 발표할지 사전에 합의한 것은 아니지만, 외부에 알리지 않은 채 가능한 한 오래 두자는 의견은 공유했다는 취지다. 윤 대사대리는 비공개 합의의 구체적인 문서나 내용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지난달 23일 젤렌스키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군 포로의 한국 송환 사실을 공개했을 당시 주우크라이나 대사관은 이를 사전에 알지 못했다고 윤 대사대리는 밝혔다. 그는 우크라이나 측이 공개를 결정한 이유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설명을 아직 내놓지 않았다고 전했다. 대통령의 연설 내용을 실무적으로 접촉하던 우크라이나 측에서도 정확히 알지 못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는 설명도 했다. 윤 대사대리는 유엔 연설 내용이 우크라이나 외교 당국 내부에서도 제대로 사전 공유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합의 부인과 사과 요구로 번진 공방
젤렌스키 대통령의 공개 발언 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과 외무부에서는 비공개 합의의 존재와 한국 정부의 사과 요구를 놓고 잇따라 입장을 밝혔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보좌관 드미트로 리트빈은 발표 사흘 뒤 “그런 (비공개) 합의는 없었다.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안드리 시비하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지난 12일 “종결된 사안이라고 생각한다”며 한국 정부의 사과 요구를 사실상 거부했다. 이에 앞서 한국 정부는 우크라이나가 포로 송환 사실을 공개한 뒤 비공개 합의 자체를 부인하자 사과를 요구했다.
윤 대사대리는 우크라이나 내부에서도 공개 과정에 대한 비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에서도 내부 협의가 없었다는 비판, 비공개 약속을 즉흥적으로 깬 데 대해 비판적 목소리가 많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우크라이나 측에서 더 이상 반박은 없다. 비공개 합의가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이 대통령 발언에 대응하는 과정에 대해서는 “대통령 발언에 대해 조정하고 반응하는 데 시간이 상당히 걸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윤 대사대리는 공개 이유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아직 듣지 못했다고 거듭 밝혔다.
대사 소환 뒤에도 이어진 외교적 대응
한국 정부는 사과 요구에 우크라이나 측이 충분히 응하지 않았다고 판단해 지난 8일 박기창 주우크라이나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이보다 앞선 이달 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우크라이나로부터 “사과의 말도 들어있는 메시지도 받았다”고 말하면서도 “그러나 저희가 생각하는 수준과는 좀 차이가 있어서 단호한 조치를 취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윤 대사대리도 국정감사에서 “우리가 사과를 요구했고 그에 맞는 수준까지 명확한 사과를 하지 않았다고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대사 소환에 앞서 한국 정부는 우크라이나 측에 항의와 사과 요구를 전달했다. 참고 기사에 따르면 박윤주 외교부 1차관은 지난달 28일 안드리 베쉬킨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대리를 초치해 항의했고, 이재명 대통령은 이달 2일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조 장관은 국정감사에서 우크라이나로부터 사과 취지의 메시지를 받았다고 밝혔지만, 우크라이나 외무부 대변인은 시비하 장관이 양국 간 공개적인 비판이 오간 데 유감을 표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공개 합의에 대해서도 우크라이나 측은 양국 간 해석 차이가 있었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문서화 어려움 설명하며 관계 회복 언급
국정감사에서는 비공개 합의를 서면 등으로 명확히 남기지 않은 것이 외교 갈등의 원인이 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윤 대사대리는 “외교적 합의를 문서화하는 건 사실상 조약”이라며 합의의 구체적인 증거를 공개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그는 포로 송환 자체에 대해 “포로 송환은 양측 모두 엄청나게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양국 관계가 안정적으로,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하고 이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밝혔다.
윤 대사대리는 우크라이나가 한국 정부와 대통령의 의사 표현을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우리나라 정부, 대통령의 의사 표현을 굉장히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지침에 따라 계속 의사를 전달하고 있고 우크라이나 외교부도 내부 협의 절차를 거쳐 긍정적 해결책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외교부는 양국 현안이 원만히 해결되기를 기대하며 우크라이나 측과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정부의 사과 요구와 우크라이나 측의 내부 협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윤 대사대리는 양국이 신뢰를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폴란드·우크라이나·러시아·벨라루스 대사관을 대상으로 한 국정감사에는 주우크라이나 대사관 차석인 윤 공사참사관이 대사대리 자격으로 화상 출석했다. 이석배 주러시아 대사도 우크라이나군의 드론 공격으로 모스크바 공항이 폐쇄돼 화상으로 감사에 임했다. 한국 정부는 우크라이나 측과 협의를 이어가고 있으며, 윤 대사대리는 우크라이나 외교부가 내부 절차를 거쳐 해결책을 마련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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