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주재 영국 총영사관 건물 (사진= 연합뉴스 제공)

영국이 이스라엘과 요르단강 서안 정착촌 제재 문제로 충돌한 가운데 예루살렘 주재 총영사관의 명칭을 ‘예루살렘 영국 대표부’로 바꾸고 직원 다수를 일시적으로 철수시키기로 했다. 이스라엘은 영국 영사관의 운영이 종료됐다고 발표했지만, 영국은 건물을 폐쇄하지 않고 팔레스타인 주민과의 업무 및 필수 서비스를 계속한다고 밝혔다. 양국은 같은 조치를 두고 서로 다른 설명을 내놨다. 총영사관은 이스라엘이 1967년 점령한 뒤 자국 영토로 병합한 동예루살렘에 있으며, 텔아비브 주재 영국 대사관과 별개로 팔레스타인과의 관계를 관리해 왔다.

총영사관 건물은 유지하고 명칭 바꿔

에드 밀리밴드 영국 외무장관은 8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이스라엘 정부와 협의를 거쳐 예루살렘 총영사관 건물을 폐쇄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스라엘 정부와 협의를 거쳐 우리 총영사관 건물은 폐쇄되지 않고 '예루살렘, 영국 대표부'로 알려질 것”이라며 대표부가 독립적으로 운영된다고 설명했다. 영국은 총영사관이라는 기존 명칭을 쓰지 않고 ‘UK Mission, Jerusalem’이라는 이름으로 공관을 운영한다. 밀리밴드 장관은 대표부가 “팔레스타인인들과의 업무 및 필수 서비스를 계속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측 발표는 공관 건물을 닫지 않고 기능을 이어간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다만 총영사관이라는 명칭 대신 포괄적인 외교 공관을 뜻하는 대표부로 바꾼 조치에 대해 외신은 사실상 ‘격하’라고 풀이했다. 이스라엘은 영국이 총영사관 운영을 종료했다고 발표했고, 영국은 건물을 유지하고 업무를 계속한다고 밝혀 조치의 성격을 다르게 설명했다. 양국 발표에서 공관 건물의 유지 여부와 현장 활동의 범위는 서로 다른 강조점으로 나타났다.

안전 문제로 직원과 가족 일시 철수

밀리밴드 장관은 직원과 시설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할 경우를 언급하며 인력 철수 방침을 밝혔다. 그는 “(이스라엘과) 이해가 없다면 우리 직원들과 시설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다”며 “이에 따라 다수 직원 및 그 가족들을 안전과 보안 보장을 위해 일시적으로 철수한다”고 말했다. 철수 대상은 직원뿐 아니라 가족도 포함한다. 영국은 이들을 일시적으로 철수시키면서도 대표부 운영과 팔레스타인 주민을 위한 필수 서비스는 계속한다고 설명했다.

이스라엘 외무장관 기드온 사르는 영국 측과 달리 영사관이 이날부터 운영을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성명에서 “예루살렘에 있는 영국 영사관은 오늘부로 운영을 종료한다”며 “예루살렘 주재 영국 영사관 간판도 철거됐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측은 총영사를 포함한 영국 외교관 20명이 이스라엘을 떠날 예정이고 7명만 남아 ‘아주 제한적인’ 범위의 활동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직원 수와 활동 범위에 관한 수치는 이스라엘 측 발표에 따른 것이다.

구분인원
이스라엘 측이 출국 예정이라고 밝힌 영국 외교관20명
이스라엘 측이 남는다고 밝힌 영국 외교관7명

서안 정착촌 제재가 갈등의 발단

이번 갈등은 영국이 요르단강 서안 정착촌과의 교역에 제재를 도입하겠다고 발표한 뒤 이어졌다. 영국은 지난달 8일 정착민 폭력 악화와 E1 구역 정착촌 추진 등 정착촌 확장을 이유로 제재 방침을 밝혔다. 이에 반발한 이스라엘은 영국에 30일 안에 예루살렘 영사관을 폐쇄하고 외교관을 철수시키라고 통보했다. 영국이 정착촌 관련 조치를 발표하고 이스라엘이 공관 폐쇄를 요구하면서 양국 간 대립이 이어졌고, 직원 철수와 대표부 전환 발표로 이어졌다.

영국 내에서는 이스라엘이 국제사회에서 점령지로 간주하는 동예루살렘의 외교 공관을 폐쇄할 권한이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밀리밴드 장관은 이날 성명에서 영국 정부의 법적 입장을 거듭 밝혔다. 그는 “우리는 200년 가까이 운영된 예루살렘 영국 총영사관을 폐쇄할 법적 권리가 이스라엘 정부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 왔다”며 “영국 정부는 동예루살렘은 점령된 영토라는 오랜 입장을 다시 강조한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의 폐쇄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도 직원 다수를 철수하는 조치를 함께 발표한 것이다.

1838년 개설…팔레스타인 관계 관리

예루살렘 주재 영국 총영사관은 이스라엘 국가 수립보다 앞선 1838년 문을 열었다. 텔아비브에 있는 주이스라엘 영국 대사관과는 별개의 기관으로 운영돼 왔다. 공관은 예루살렘뿐 아니라 요르단강 서안 전체와 가자지구 내 팔레스타인과의 관계도 관리했다. 1967년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을 점령한 뒤 자국 영토로 병합했지만, 영국 정부는 동예루살렘을 점령된 영토로 보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공관이 다뤄 온 대상과 영국의 영토 인식은 이번 폐쇄 요구를 둘러싼 양국 입장 차이의 배경으로 제시됐다.

앞서 영국이 이스라엘의 요구대로 영사관을 폐쇄할 경우 주영 이스라엘 외교관을 추방하는 등 맞대응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밀리밴드 장관은 그러나 즉각적인 상응 조처를 하지는 않겠다고 밝혔다. 그는 “향후 몇 달간 우리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그러한 논의가 진행되고 신뢰할 수 있을 때까지 상응 조처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외무부는 이스라엘의 조치를 “불법”이라고 규탄하고, 이를 점령된 도시에 대한 주권을 행사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했다.

영국 대표부는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팔레스타인인들과의 업무와 필수 서비스를 계속 수행한다는 방침이다. 이스라엘은 영사관 운영 종료와 간판 철거를 발표했고, 영국은 공관 건물을 유지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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