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4일 중국 랴오닝성 단둥을 방문해 왕후닝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과 회담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회담에 앞서 항미원조기념관을 찾았고, 왕 주석과 함께 단둥의 자동차 공장도 참관했다. 최근 정식 개통한 신압록강대교를 이용해 중국을 방문한 뒤 같은 다리로 북한에 돌아갔다.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 기념일을 하루 앞둔 방문인 데다 다음 달 중국 선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전후한 북미 정상회담설이 제기된 상황이어서, 북중 관계와 중국의 대북 역할, 북미 대화 논의 여부에 관심이 모인다.
북미 정상회담 전망 흔들리는 시점에 단둥 방문
김 위원장의 방중은 북미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이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이뤄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9일 북미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에 대해 “모르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김 위원장과 연내 만날 수 있다는 의향을 내비친 바 있지만, 이번 발언 이후 회담 전망이 이전보다 불확실해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외신 보도에는 한미 당국자들이 연내 북미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보고 있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런 흐름 속에서 중국이 북미 정상외교 재개를 촉진하는 중재자 역할을 시도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석좌는 보고서에서 중국이 북미 정상외교 재개를 촉진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사는 한편, 북러 밀착으로 커진 러시아의 대북 영향력을 견제하려 할 수 있다는 해석도 제시됐다. 중국은 미국의 북한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며 대북 관계를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과 함께, 북미 대화 재개 국면에서 중국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행정부 1기 당시 북미 대화가 진행되던 2018∼2019년 중국을 네 차례 방문했다. 당시 김 위원장이 한국·미국과 직접 정상회담을 추진하면서 중국이 배제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지만,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중국이 북한에 외교적 안전판을 제공하고 대북 영향력을 확인했다는 평가도 있었다. 이번 회담에는 왕 주석뿐 아니라 왕이 중국 외교부장 겸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최선희 북한 외무상, 김여정 노동당 총무부장이 참석했다. 참석자 구성과 회담 내용을 근거로 외교 현안이 논의됐을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북미 정상회담이 실제 의제로 다뤄졌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참전 기념일 앞두고 항미원조기념관 찾아
이번 방문은 중국이 한국전쟁 참전 기념일로 삼는 10월 25일을 하루 앞두고 이뤄졌다. 중국은 1950년 10월 19일 한국전쟁에 참전했고, 중국군이 첫 승리를 거둔 10월 25일을 항미원조 기념일로 정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단둥 방문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중요한 역사적 고비에 목숨과 피로 북한을 지원한 중국군을 추모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항미원조기념관에 헌화하고 관련 시설을 찾았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왕 주석이 회담에서 북중 간 전략적 소통과 협력을 강화하자고 밝혔다고 전했다. 왕 주석은 “전략적 소통·협력을 강화해 각자의 주권·안보·발전이익 수호를 위한 평화롭고 안정된 대외환경을 조성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올해가 북중 우호협력상호원조조약 체결 65주년이라고 언급하고, 북한 사회주의 사업에 대한 중국의 오랜 지지와 도움에 감사의 뜻을 전하며 “양측의 협력 전망이 매우 넓다”고 말했다. 양측은 중국 국경절을 계기로 축전과 답전을 주고받으며 연대를 강조한 바 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그는 왕 주석의 배웅을 받으며 신압록강대교를 통해 북한으로 돌아갔다. 기념관은 앞서 9일 공지를 내고 19일부터 24일까지 휴관한다고 밝혔다. 원문은 휴관 기간과 김 위원장의 방문 일정이 맞물린 점을 들어 방중 계획이 그 무렵부터 진행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을 전했다. 단둥에서의 기념관 방문과 중국군 추모는 양국이 전쟁 시기부터 이어진 관계를 강조하는 일정으로 보도됐다.
신압록강대교 개통 뒤 인적·경제 교류 논의
김 위원장이 이용한 신압록강대교는 중국 단둥과 북한 평안북도 신의주를 잇는다. 중국 측이 비용을 부담해 2014년 완공했지만 북한 측 연결도로와 통관시설 문제로 개통이 미뤄져 왔다. 양국은 지난 15일 다리를 정식 개통했다. 참고 보도에 따르면 이 교량은 북중 교역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단둥과 신의주를 연결하는 왕복 4차로 다리다. 김 위원장이 개통 뒤 9일 만에 이를 통해 중국을 오가면서 교량을 이용한 교류 확대에도 관심이 쏠렸다.
| 항목 | 내용 |
|---|---|
| 교량 길이 | 3026m |
| 차로 규모 | 왕복 4차로 |
| 완공 시점 | 2014년 |
| 정식 개통 | 10월 15일 |
왕 주석은 신압록강대교 개통을 계기로 인적 왕래와 경제·무역 협력을 확대하자고 밝혔다. 회담에서 다리를 통한 인적 교류 확대가 논의된 만큼, 향후 실제 왕래와 교역이 어떻게 이뤄질지가 관심사다. 지난 6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때도 중국인의 북한 단체관광 재개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화물 물류뿐 아니라 인적 교류도 정상화돼야 다리 개통에 따른 효과가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북한이 최근 몇 년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를 지원하며 북러 관계를 강화한 점도 중국의 대북 정책과 관련해 언급됐다. 중국이 경제 협력을 통해 북러 밀착에 대응하고 관계의 무게를 조정하려 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이번 회담에서 경제 협력과 관련해 확인된 내용은 왕 주석이 인적 왕래와 경제·무역 협력 확대를 제안했다는 점, 그리고 김 위원장이 자동차 공장을 참관했다는 점이다. 교류 확대를 위한 구체적 조치나 일정은 원문에 공개되지 않았다.
중국의 역할 두고 엇갈린 전문가 분석
김 위원장의 방문이 북미 대화와 연결될 가능성을 두고 전문가들의 견해는 엇갈렸다.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는 이번 방중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회담을 계속 원하는 상황에서 애태우기 작전 같은 것”이라며 “중국이 뒷배임을 확인하는 동시에 중국의 (배제) 우려도 불식시켜 주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희옥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북미 대화와 북중 경제협력이 논의됐을 수 있다고 봤다. 그는 “(북한으로서는) 중국과 논의하는 모양새를 취해 시 주석에게는 중재자 위상을 높여주고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북미 정상회담을 유도하려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동길 베이징대 교수는 북미 대화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관측에 대해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본다”며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 견제에 유용한 카드인 북한을 이 상황에서 내놓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회담 상대가 중국 최고지도자인 시 주석이 아니라 왕 주석이라는 점도 북미 정상회담 논의 여부와 관련해 언급됐다. 다만 회담 참석자에는 왕이 외교부장과 최선희 외무상도 포함됐다. 현재까지 공개된 회담 발언에는 북미 정상회담을 직접 언급한 내용이 없다.
이희옥 교수는 이번 방중이 북한의 요청으로 이뤄진 것으로 보면서 “중국이 요청했다면 베이징에서 정상회담을 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APEC을 계기로 김 위원장이 다시 중국을 방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번 방중의 배경을 놓고는 중국과의 관계를 확인하고 경제 협력을 논의하려는 방문이라는 해석과, 북미 대화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을 고려한 것이라는 분석이 함께 제기됐다. 그러나 공개된 일정과 발언만으로는 북미 회담 관련 논의의 구체적 내용이나 중국의 중재 계획이 확인되지 않았다.
다음 달 중국 선전에서 열릴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북미 정상회담 개최 여부와 중국의 역할에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단둥 회담에서 확인된 것은 참전 기념일을 앞둔 기념관 방문, 왕 주석과의 회담, 신압록강대교를 통한 이동, 인적 왕래와 경제·무역 협력 확대 제안이다. APEC을 계기로 한 추가 방중 가능성은 이희옥 교수의 전망으로 제시됐으며, 관련 일정은 발표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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