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평등가족부 주최로 2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젠더폭력 양형기준 포럼'에서 한민경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2013년 형법 개정으로 성범죄 친고죄 규정이 삭제됐음에도 선고 과정에서 피해자의 처벌불원 의사가 여전히 감경 요소로 고려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는 이 때문에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합의금을 제시해 형량을 낮추려 하거나 이른바 '기습 공탁'을 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하급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도 상급심에서 집행유예로 감경되는 경우까지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피고인이 입대를 앞두고 있다거나 충동적으로 범행했다는 점, 지인 대상 범행이 아니라는 사정을 참작한 판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디지털성범죄 선고에서도 불법 촬영물이 유포되지 않아 추가 피해가 없었다거나 피고인이 범행으로 경제적 이익을 얻지 않았다는 점을 유리한 정상으로 설시한 판결이 있었다고 전했다. 피해자 전신을 촬영한 경우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거나, 여자친구를 대상으로 한 범행에서 '인적 신뢰관계'를 불리한 정상이 아닌 유리한 정상으로 본 판결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한 교수는 "양형기준에 대한 법원 내 교육과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법원 내 성인지 감수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성범죄와 디지털성범죄 양형기준에서 '처벌불원'을 삭제해야 한다"며 "범행과 무관한 행위자 관련 감경 요소를 적용하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에서 이경환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양형기준에서 처벌불원을 삭제하면 가해자와 피해자 간 합의 유인이 떨어져 피해회복이 더뎌질 수 있지만, 이를 계기로 배상명령제도 개선 등을 보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또 처벌불원을 양형기준에 넣어 합의를 유도하는 방식에 대해 "피해자가 처벌이냐 돈이냐를 선택하게 만든다"며 "이는 피해 당사자에게 사법적 판단을 전가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수진 법무법인 혜석 변호사는 "처벌불원이 지금처럼 작동해서는 안 된다는 진단에는 공감하지만, 양형기준에서 배제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며 "실무에서 합의는 수사와 재판 밖에서 협상력을 갖는 요소 중 하나"라고 말했다.
반면 양형위원회 위원으로 해당 양형기준 마련에 참여했던 김혜경 계명대 교수는 "성범죄 처벌의 보호 법익은 성적 자기 결정권"이라며 "어떻게 처벌할까에 있어서 개인 의사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한얼 서울중앙지검 검사도 "두 당사자의 문제를 잘 아는 피해자의 의사는 기본적으로 존중돼야 한다"며 "피해회복 관점에서도 신속하고 충분한 피해배상을 전제로 한 처벌불원 의사표시는 양형에 반영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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