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법재판소는 27일 정당한 사유를 따지지 않고 고용주가 병역 기피자를 일괄 해고하도록 규정한 병역법 76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해당 조항은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장, 고용주가 병역 기피자를 공무원이나 임직원으로 임용·채용할 수 없고, 이미 재직 중이라면 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1962년 5·16 군사정변 직후 병역 기피 근절을 목적으로 도입된 이 조항은 이후 제재 대상 고용주 범위를 넓히고 대체복무 이탈자의 취업까지 제한하는 방향으로 강화돼 왔다. 헌재는 해고 조항 자체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당사자에게 정당한 사유를 소명할 기회를 주지 않는 점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국회는 2028년 2월 29일까지 관련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
연합뉴스가 병무청에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병무청은 2017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병역 거부자 329명이 근무하는 직장에 해직 요구 공문을 보냈다. 고용주가 이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6개월 이하 징역이나 200만원 이상 2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지도록 돼 있어, 사실상 해고를 거부할 수 있는 고용주는 없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인정받고도 대체복무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가전 전문 대기업과 중견 건설사 등에서 일하다 해고된 뒤 청소·세차 아르바이트 등 불안정한 일자리로 밀려난 사례도 있었고, 법적으로 받을 수 있는 실업급여조차 거절당한 경우도 있었다고 전해졌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4년과 2016년 두 차례에 걸쳐 병역법 개정을 권고했지만, 병역 문제에 민감한 여론에 밀려 국회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병역을 거부한 시민단체 한베평화재단의 활동가 '두부'는 연합뉴스에 "인권위 등에서 문제라고 지적했음에도 바뀌지 않는 것이 야속했는데 너무 다행"이라며 "이미 해고를 당한 사람에 대한 보상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베평화재단은 성명서를 통해 "국회는 더이상 개정을 미뤄서는 안 된다"며 "1962년의 법이 2026년의 시민에게 '그를 해직하라'고 명령하는 현실을 이제 끝낼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국가는 병역의무 이행을 명분으로 개인의 직업과 생계를 일률적으로 박탈해서는 안 되고, 고용주에게 해직을 강요하는 방식으로 그 책임을 떠넘겨서도 안 된다"며 병무청에 즉각적인 법 집행 중단을 촉구했다.
다만 소명 절차 부재만을 위헌 사유로 삼은 헌재 결정을 두고 '반쪽짜리 결정'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임재성 변호사는 "결국 병무청이 소명 절차를 마련해 정당한 사유가 없다고 판단하면 계속 해고 요구를 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위헌 소지가 충분했음에도 수십 년간 논의가 미뤄진 것은 이 법의 적용 대상이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약자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병역법 76조에 대한 또 다른 헌법소원을 진행 중인 김진우 변호사는 "기한까지 개정하지 않으면 처분의 근거 규정이 사라진다"며 "위헌성이 확인된 만큼 입법자는 적극적으로 개정 작업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병무청은 이날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를 존중해 병역법 개정안을 마련할 예정"이라며 "법률 개정안 내용 등은 결정문 세부 내용을 분석해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에 부합하게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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