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몰아치기부터 트로트 특집까지 명절 연휴 안방극장 경쟁 본격화

추석 연휴를 앞두고 지상파와 종편이 명절 특수를 겨냥한 특집 편성표를 일제히 공개하면서 안방극장 경쟁이 본격화됐다. 연휴 기간은 광고 단가가 평소보다 높게 책정되는 데다 가족 단위 시청자가 한꺼번에 몰리는 시기여서 방송사마다 간판 예능을 총동원하는 분위기다. 올해도 어김없이 기존 인기 프로그램의 확장판과 트로트·가요 특집, 스타들의 게임 대결 콘텐츠가 편성표 전면에 배치됐다. 명절 연휴는 방송사들에게 한 해 편성 전략의 성패를 가늠하는 시험대로 여겨지는 만큼 준비 기간도 평소보다 길게 잡는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지상파 3사는 예년과 비슷하게 기존 예능 프로그램의 몸집을 키운 특집판을 전면에 내세웠다. 한 방송사는 인기 예능의 출연진을 두 배로 늘린 특집 버전을 연휴 첫날 밤 시간대에 배치했고, 다른 방송사는 트로트 오디션 출신 가수들을 한자리에 모은 콘서트 형식의 특집을 준비했다. 드라마 재방송을 몰아서 편성하던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신규 콘텐츠 제작 비중을 늘리는 추세도 뚜렷하다. 짧은 클립 위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청자가 늘면서 방송사들이 본방송 사수보다 재방송이나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다시보기를 겨냥한 전략으로 선회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부 방송사는 특집 프로그램 방영 직후 하이라이트 영상을 별도로 편집해 소셜미디어에 먼저 공개하는 방식을 병행하며 화제성 확보에도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종편 채널들은 지상파와 정면 승부를 피하는 대신 특정 연령층을 겨냥한 세분화 전략을 택했다. 한 종편 채널은 중장년층을 겨냥한 트로트 특집을 명절 저녁 황금시간대에 배치했고, 다른 채널은 부부·가족 갈등을 다루는 상담형 예능의 특집판을 준비했다. 시사·교양 채널로 분류되던 곳들도 연휴 기간에는 예능 편성을 늘리는 모습을 보였다. 방송업계 관계자는 "명절 연휴는 채널 충성도를 높일 수 있는 기회로 여겨져 각 사가 평소보다 제작비를 늘려 투입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연휴 특집 하나의 성공 여부가 이후 정규 편성 개편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아 내부적으로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시기"라고 덧붙였다.
시청률 경쟁의 이면에는 광고 수익 확보라는 절박함이 자리한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매년 발표하는 방송 광고 매출 통계를 보면 명절 연휴 전후 광고 단가는 평상시보다 높게 형성되는 경향을 보여왔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연휴 기간 시청률이 하반기 전체 광고 유치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편성 전략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한 방송 편성 담당자는 "연휴 첫날과 마지막 날 저녁 시간대가 승부처로 꼽힌다"며 "귀성과 귀경이 겹치는 시간을 피해 온 가족이 모여 있는 시점을 노려 주력 프로그램을 배치한다"고 전했다. 실제로 방송사 내부에서는 연휴 편성표를 확정하기 몇 달 전부터 시간대별 예상 시청 인구를 분석해 프로그램 순서를 조정하는 작업을 거친다고 알려졌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매년 비슷한 포맷의 특집 예능이 반복된다는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명절에만 볼 수 있는 특별 출연진 조합을 기다리는 시청자도 여전히 많다. 직장인 김모 씨(41)는 "귀성길에 오르기 전 가족들과 함께 볼 만한 프로그램을 미리 찾아보는 게 명절 준비의 일부가 됐다"고 말했다. 반면 대학생 이모 씨(23)는 "본방송보다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로 필요한 부분만 찾아보는 경우가 많아 편성표 자체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고 전했다. 주부 박모 씨(52)는 "명절에는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이 유일하다 보니 그날만큼은 다 같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고른다"고 말해 세대에 따라 시청 습관이 크게 갈리는 모습을 보였다.
세대별 시청 방식의 변화도 감지된다. 방송통신위원회와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이 조사한 매체 이용 행태 자료에 따르면 20~30대의 실시간 방송 시청 비중은 해마다 줄어드는 반면 40대 이상에서는 여전히 실시간 시청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다. 이 때문에 방송사들은 중장년층을 겨냥한 프로그램은 실시간 편성에 집중하고, 젊은 층을 겨냥한 콘텐츠는 짧은 클립이나 온라인 우선 공개 방식으로 이원화하는 전략을 병행하고 있다. 한 방송 관계자는 "같은 프로그램이라도 실시간 방송용 편집본과 온라인 공개용 편집본을 따로 준비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콘텐츠 다양성 측면에서 아쉬움을 지적하는 시각도 있다. 한 방송문화 연구위원은 "명절 특집이 매년 비슷한 형식의 게임 예능이나 트로트 콘서트에 편중돼 있어 새로운 시도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라며 "시청자 취향이 세분화되는 흐름에 맞춰 다큐멘터리나 교양 프로그램의 명절 특집 편성도 늘어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방송사는 역사·인문 교양 프로그램의 특집판을 오전 시간대에 배치하며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으나 전체 편성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은 편이다. 이 연구위원은 "안전한 포맷을 반복하려는 관성이 여전히 강하다 보니 편성표만 봐도 매년 어떤 프로그램이 나올지 예측 가능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가족이 함께 모이는 시간이 줄어드는 사회적 변화도 편성 전략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1인 가구 증가와 귀성을 하지 않는 가구가 늘면서 혼자 명절을 보내는 시청자를 겨냥한 콘텐츠도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 한 종편 채널은 혼자 보내는 명절을 소재로 한 토크쇼 형식의 특집을 준비했고, 여행이나 취미 활동을 소개하는 프로그램도 연휴 편성에 포함됐다. 통계청이 발표한 가구 형태 통계에서도 1인 가구 비중은 매년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이는 방송사들이 명절 편성에서 가족 중심 콘텐츠와 개인 중심 콘텐츠를 함께 배치하는 배경으로 꼽힌다. 올해 추석 연휴 방송 편성표는 각 방송사 홈페이지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사전에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