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고소 대신 법원 조정 택하는 공동주택 거주자들

밤 11시, 위층에서 들리는 쿵쿵거림에 몇 달을 참아온 김모 씨(41)는 결국 경찰 대신 법원을 택했다. 수차례 관리사무소에 민원을 넣고 직접 찾아가 항의도 해봤지만 관계만 틀어졌을 뿐 소음은 줄지 않았다. 김씨는 "고소를 하면 아예 원수가 될 것 같아서 조정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김씨처럼 형사 고소 대신 법원의 조정 절차로 눈을 돌리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다.
층간소음을 둘러싼 갈등이 형사 고소보다 민사조정 신청으로 옮겨가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폭행이나 협박 등 형사 사건으로 비화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법원의 조정 절차를 통해 문제를 풀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층간소음을 포함한 공동주택 생활 분쟁 관련 민사조정 신청 건수는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아파트와 다세대주택이 밀집한 수도권 지역 법원에서 접수되는 신청 건수가 다른 지역보다 두드러지게 많다는 점도 눈에 띈다.
민사조정은 소송과 달리 당사자 간 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는 절차다. 법원이 지정한 조정위원이 양측 입장을 듣고 중재안을 제시하며, 양측이 동의하면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소송보다 비용과 시간이 적게 들고 감정적으로도 덜 소모적이라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형사 고소의 경우 수사 과정에서 오히려 이웃 간 갈등이 깊어지는 사례가 많았던 것과 비교된다. 조정은 재판처럼 승패를 가르지 않고 서로 양보할 수 있는 지점을 찾는 구조여서, 같은 공간에서 계속 마주쳐야 하는 이웃 관계의 특성상 상대적으로 적합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환경부 산하 층간소음이웃사이센터에도 상담 건수가 꾸준히 접수되고 있다. 센터는 현장 소음 측정과 중재 상담을 병행하지만 강제력이 없어 실질적인 해결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센터 상담이 성과를 내지 못한 이들이 다음 단계로 법원 조정을 택하는 흐름이 생겨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센터에 접수된 민원 가운데 상당수가 현장 방문 측정 이후에도 당사자 간 합의로 이어지지 못하고 종결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담원이 중재를 시도해도 위층과 아래층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경우가 반복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조정 신청이 늘어난 만큼 실제 성립률이 그에 비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법조계에서는 층간소음 관련 조정 성립률이 다른 유형의 민사조정보다 낮은 편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소음의 원인과 정도를 객관적으로 입증하기 어렵고, 당사자들이 이미 감정적으로 대립한 상태에서 조정 테이블에 앉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 변호사는 "소음 측정 자료가 명확하지 않으면 조정위원도 중재안을 제시하기 어렵다"며 "결국 합의가 불발돼 소송으로 넘어가는 사례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조정 기일에 양측이 과거 민원 이력까지 감정적으로 끄집어내면서 정작 핵심 쟁점인 소음 수준 논의로 넘어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조정이 성립되더라도 이행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문제로 남는다. 매트 설치나 생활 소음 자제 등을 조건으로 합의가 이뤄져도 강제이행 장치가 마땅치 않아 재발 시 다시 분쟁이 불거지는 사례가 보고된다. 한 공인중개사는 "층간소음 문제로 조정까지 간 집은 결국 이사를 가거나 매도를 택하는 경우를 여러 번 봤다"고 전했다. 실제로 조정 합의서에 소음 저감 조치를 명시해도 이를 지키지 않으면 다시 분쟁조정을 신청하거나 손해배상 소송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시간과 비용이 추가로 드는 점이 당사자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
전문가들은 조정 신청 증가 자체는 긍정적 신호로 본다. 감정싸움이 폭행이나 협박 같은 형사 사건으로 번지기 전에 대화의 장을 마련한다는 점에서다. 한 연구위원은 "형사 고소는 처벌로 끝나지만 조정은 관계 회복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도 "다만 소음 측정 기준과 중재 전문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조정의 실효성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조정위원이 건축 구조나 소음 공학에 대한 기초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보다 설득력 있는 중재안을 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실제 조정 과정에서는 소음 발생 시점과 강도를 입증할 객관적 자료가 핵심 쟁점이 된다. 법원은 소음측정기록, 관리사무소 민원 이력, 녹음 자료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지만 공동주택 구조 특성상 소음원을 특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국토교통부가 마련한 공동주택 층간소음 기준이 있지만 이를 적용해 실측하는 절차 자체가 번거롭고 비용이 든다는 지적도 나온다. 측정 장비를 갖추고 일정 기간 소음을 기록해야 신뢰할 만한 자료로 인정받는데, 개인이 직접 이를 준비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사 등 물리적 해결책을 택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는 거주자들에게 조정은 현실적인 대안으로 자리잡고 있다. 다만 조정 성립 이후에도 소음이 재발하면 다시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남는다. 공동주택관리법상 층간소음 관리위원회를 구성해 자율적으로 중재하도록 하는 제도도 있지만 실제 가동되는 단지는 많지 않다. 관리위원회가 형식적으로만 존재하고 실제 분쟁이 발생했을 때 중재 역할을 하지 못하는 단지가 적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택관리사 자격을 가진 한 관계자는 "관리위원회가 활성화된 단지에서는 조정까지 가지 않고 자체적으로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분쟁 예방을 위한 초기 대응 체계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법원 조정 신청 전 단계에서 관리사무소나 지자체 중재 절차를 거치도록 안내하는 지자체도 늘고 있다. 서울의 한 구청 관계자는 "주민 간 갈등이 법적 분쟁으로 번지기 전에 중재 상담을 먼저 받도록 홍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부 지자체는 층간소음 전문 상담 인력을 배치해 초기 단계에서 당사자 간 대화를 유도하는 시범 사업도 운영하고 있다.
30대 직장인 박모 씨(33)는 위층 아이의 뛰는 소리로 두 해 가까이 갈등을 겪다가 조정을 신청한 경우다. 박씨는 "처음에는 관리사무소를 통해 완곡하게 전달했지만 달라지지 않았고, 직접 만나 이야기하려니 감정만 격해졌다"며 "조정 절차에서는 제3자가 끼어드니 오히려 차분하게 대화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조정 과정에서 합의안이 나오기까지 수개월이 걸렸고, 그사이에도 소음은 간헐적으로 계속됐다고 전했다.
층간소음으로 조정을 신청하려는 경우 소음 발생 일시와 정도를 기록한 자료를 최대한 축적해두는 것이 조정 성립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법조계의 공통된 조언이다. 개별 사안의 법적 대응 방향은 변호사 등 전문가와 상담을 거쳐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