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이자 상도동계 핵심 인사로 활동한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이 24일 오전 3시30분 중앙보훈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91세다. 고인은 1970~1980년대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김 전 대통령과 함께했고, 1990년 3당 합당 뒤에는 정무제1장관을 지냈다. 김 전 대통령의 대통령 당선 이후 민주자유당 사무총장과 내무부 장관을 맡았다. 1997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오랜 기간 투병해왔다.
최 전 장관은 6선 국회의원으로, 김동영 전 정무1장관과 함께 ‘좌동영 우형우’로 불릴 만큼 상도동계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장례는 대한민국헌정회장과 4·19혁명공로자회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장례위원장에는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과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 정대철 헌정회장이 참여한다. 빈소는 서울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0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7일 오전 8시다.
4·19 학생 대표로 민주화운동에 참여
1935년 울산에서 태어난 최 전 장관은 부산공고를 졸업한 뒤 동국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왔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60년 4·19혁명 때 동국대 학생 대표로 활동했다. 1968년에는 ‘4·19 6·3범청년회’ 사무총장을 맡았다. 이후 신민당에서 정치를 시작해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울산·울주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신민당 소속으로 국회에 처음 입성한 뒤 제9·10·13·14·15대 국회의원을 지내 모두 6선 의원이 됐다.
고인은 초선 의원 시절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박정희 정권의 ‘10월 유신’에 의한 영구집권 음모를 폭로했다. 이 일로 서빙고 인근 국군보안사령부 소속 대공분실에 끌려가 3개월간 고문을 당했다. 정치 활동 초기부터 군사정권의 탄압을 겪은 그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민주화 운동을 함께한 정치인으로 활동했다. 김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상도동계에서 김동영 전 정무1장관과 함께 ‘좌동영 우형우’로 불렸고, 고인은 ‘우형우’로도 통했다.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시기는 군사정권에 의해 의원직을 잃은 기간을 사이에 두고 이어졌다. 제8·9·10대 국회의원에 이어 제13·14·15대 의원을 지냈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가 5·17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에는 국군보안사령부에 다시 연행돼 고초를 겪었고, 신군부에 의해 의원직을 상실했다. 이후에도 김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운동에 참여하며 야권의 주요 당직을 맡았다.
신군부 시절 연행과 야권 활동
최 전 장관은 1981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설립한 민주산악회에 가입해 활동했다. 정치규제에서 해금된 뒤인 1985년에는 민주화추진협의회 간사장을 맡았다. 민주화추진협의회 활동을 비롯해 민주산악회 참여 등으로 민주화 운동을 이어갔으며, 신민당 부총재와 민주당 수석부총재, 원내총무 등을 지냈다. 야당에서 당직을 맡으며 정당 활동을 이어간 시기는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의원직을 잃은 뒤였다.
국군보안사령부에 연행돼 고문을 겪은 일은 두 차례에 걸쳐 그의 정치 이력에 남았다. 초선 때는 대정부 질의에서 10월 유신에 따른 영구집권 음모를 폭로한 뒤 대공분실에 끌려가 3개월간 고문을 당했다. 1980년 5·17 비상계엄 선포 직후에도 보안사령부에 연행됐고, 신군부 집권 과정에서 의원직을 잃었다. 참고 자료는 당시 그가 보안사령부에 여러 차례 연행돼 고문을 겪었다고 전했다.
1985년 민주화추진협의회 간사장을 맡은 뒤에도 최 전 장관은 야당의 주요 당직을 거쳤다. 신민당 부총재를 지냈고 민주당에서는 수석부총재와 원내총무를 맡았다. 김 전 대통령과 함께 민주화운동을 한 상도동계 핵심 인사로 활동했으며, 김동영 전 정무1장관과 함께 ‘좌동영 우형우’라는 호칭으로 불렸다. 이 호칭은 두 사람이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이자 상도동계의 주요 인사였다는 점과 함께 전해졌다.
3당 합당 뒤 정부·여당 요직 맡아
1990년 3당 합당 이후 최 전 장관은 민주자유당에 합류해 정무제1장관을 지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민주자유당 사무총장과 내무부 장관을 맡았다. 민주화운동과 야당 활동을 거쳐 집권 여당과 정부의 주요 직책을 맡은 것이다. 고인은 불도저식 추진력으로 문민정부 초기 개혁 정책에 기여한 인물로 평가받았다. 김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정치적 동지로 꼽혔고, 상도동계에서 핵심 인사로 활동했다.
1996년 제15대 총선에서 당선된 뒤에는 신한국당의 차기 대선주자군인 이른바 ‘9룡’ 가운데 한 명으로 거론됐다. 한때 여권의 대선주자급 인사로 부상했지만 1997년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정치 활동을 이어가지 못했다. 참고 자료에 따르면 최 전 장관은 1997년 3월 11일 뇌졸중으로 쓰러져 정계를 떠났고, 이후 오랜 기간 투병 생활을 했다. 대선주자로 거론되던 시점에 건강 문제로 정치 활동을 중단한 뒤 공개적인 정치 활동은 이어지지 않았다.
고인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통령 당선 이후 민주자유당 사무총장과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1990년 3당 합당 뒤에는 정무제1장관을 맡았다. 김동영 전 정무1장관과 함께 상도동계의 중심 인물로 불렸으며, 민주화운동을 함께한 정치적 동지에서 문민정부의 여당과 정부 요직을 맡는 경력을 쌓았다. 이후 1997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장기간 투병했다.
권노갑·김덕룡 등 장례위원장 참여
유족은 부인 원영일씨와 2남2녀인 최석균·최제완·최은지·최은실씨다. 장례는 대한민국헌정회장과 4·19혁명공로자회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유족 측에 따르면 장례위원장에는 권노갑 김대중재단 이사장, 김덕룡 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 정대철 헌정회장이 참여한다. 권 이사장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인 동교동계 좌장으로, 김 이사장은 상도동계 인사로 소개됐다.
공동장례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맡는다. 상도동계 인사인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김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도 금명간 빈소를 찾을 것으로 전해졌다. 빈소는 서울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0호실이다. 장례 일정과 장지는 유족 측이 전한 내용에 따르면 발인 27일 오전 8시, 장지는 국립4·19민주묘지다.
최 전 장관은 24일 오전 3시30분 중앙보훈병원에서 별세했다. 고인은 국립4·19민주묘지에 안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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