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북극을 ‘글로벌 패권 경쟁의 최전선’으로 규정하고, 환경과 자원 개발에 무게를 뒀던 기존 북극정책에서 안보와 회복력 강화로 중심을 옮겼다. EU 집행위원회는 20일(현지시간) 새 북극전략을 발표하고 회원국 및 북극 지역 파트너와 협력하는 한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공조해 대비태세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쇄빙선 역량을 늘리고 작전 수행 능력을 강화하는 방안도 포함했다. 해저 인프라를 겨냥한 파괴공작에 대비해 케이블을 감시·보호하는 ‘북극 케이블 허브’를 세우고, 위협 탐지 스마트 기술을 지원한다는 구상이다. 북극 경제협력을 위해 유럽의 항만·철도·에너지 터미널과 위성·디지털 인프라를 지역 무역·운송망에 통합하는 계획도 내놨다. 반면 2021년 전략에 담겼던 북극 신규 탄화수소 개발을 금지하는 다자간 법적 의무 제안은 새 문서에서 빠졌다.

안보·회복력을 최우선에 둔 새 전략

EU 집행위원회가 공개한 새 북극전략은 북극 안보와 회복력 강화를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EU는 회원국과 북극 지역 파트너들과 협력하고 나토와 공조해 이 지역의 대비태세를 개선하기로 했다. 쇄빙선 역량 증대를 포함해 북극에서 작전을 수행할 능력을 강화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새 전략에는 북극 안보를 유럽 전체의 안보와 연결해 다루겠다는 방향이 담겼다.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북극 안보는 유럽의 안보”라며 “러시아와 중국이 북극에서 영향력과 야심을 키우면서 북극은 글로벌 패권 경쟁의 최전선이 됐다”고 말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북극은 지정학적 질서의 지각판이 부딪치는 곳”이라며 “주권과 영토 보전, 이 지역 안정을 뒷받침한 규범을 더 이상 당연하게 여기지 못하게 된 상황에서 우리는 행동하고 전략적 태세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EU는 러시아와 중국의 북극 내 영향력 확대를 안보 과제의 배경으로 제시했다.

해저 케이블 감시부터 그림자 선단 추적까지

EU는 해저 인프라 파괴공작에 대비하기 위해 케이블을 감시하고 보호하는 ‘북극 케이블 허브’를 설립하기로 했다. 해저 케이블 등 인프라에 대한 위협을 탐지하는 스마트 기술도 지원한다. EU가 제시한 허브의 초기 기능은 케이블 감시와 보호다. 이후에는 러시아산 석유를 수출하는 이른바 ‘그림자 선단’ 유조선을 추적하고, 불법 어업과 해양 오염을 탐지하는 역할도 맡도록 기능을 확대할 계획이다.

새 전략은 기반시설 보호와 작전 수행 능력을 함께 다룬다. EU는 나토와 협력해 대비태세를 개선하고 쇄빙선 역량을 늘리겠다고 했다. 북극 케이블 허브의 기술 지원은 인프라 위협 탐지에 초점을 맞추며, 향후에는 선박과 해양 활동을 감시하는 기능까지 더하는 구상이다. 전략에 담긴 조치는 회원국 및 북극 지역 파트너와의 협력 아래 추진된다. EU는 북극의 안보·회복력 강화와 함께 경제 협력 확대도 전략에 포함했다.

자원 개발 지원하되 화석연료 금지 구상은 빠져

EU는 북극에서 경제협력 기회가 나타나고 있다고 밝히며 유럽의 항만, 철도, 에너지 터미널, 위성·디지털 인프라를 북극 지역 무역·운송망에 통합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재생에너지와 지속 가능한 광물자원 개발도 계속 지원하겠다고 했다. 동시에 2021년 ‘북극 공동성명’에 따라 북극을 포함한 석유·석탄·가스 자원이 지하에 남아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은 유지한다고 밝혔다.

다만 새 북극전략에는 북극 신규 석유·가스 시추를 국제적으로 금지하자는 방안이 포함되지 않았다. EU는 환경 보호를 이유로 신규 시추를 국제적으로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고, 2021년 전략에는 북극 탄화수소 자원 개발을 금지하는 다자간 법적 의무를 마련하자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새 전략에서 해당 제안이 빠지면서 신규 자원 개발을 금지하는 다자간 국제협약을 추진하려던 목표는 사실상 철회된 것으로 해석된다.

구분수치내용
이전 전략2021년탄화수소 개발 금지 다자간 법적 의무 제안
전략 수정 간격5년EU가 북극전략을 수정한 기간

러시아·중국·미국 경쟁과 기후 공조 약화

EU가 5년 만에 북극전략을 수정한 배경에는 러시아와 중국, 미국이 이 지역의 영향력과 자원을 놓고 경쟁하면서 지정학적 긴장이 높아진 상황이 있다. 기후변화로 북극해 빙하가 줄면서 북극 항로와 미개발 자원의 가치가 상승했고, 중국과 러시아는 북극 항로 개발과 북극해 탐사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원문은 이런 역내 세력 확대와 경쟁을 EU가 안보 중심의 새 전략을 마련한 배경으로 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덴마크와 덴마크령 그린란드와 3자 안보 협정을 체결한 뒤 그린란드에서 대규모 석유·가스·광물 탐사를 추진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국제사회의 기후변화 대응 공조가 약화한 점도 정책 변화의 배경으로 꼽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화석연료 개발을 지지하고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에서 재차 탈퇴했다. 이에 따라 북극 신규 자원 개발 금지에 관한 국제 합의를 도출하기가 더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원문은 전했다.

EU 집행위원회 내부에서는 새 전략의 에너지 정책을 둘러싼 이견도 나타났다. 한 매체 보도에 따르면 일부 관계자는 앞으로 EU의 천연가스 수요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전기화와 수입 화석연료 의존도 축소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미국-이란 전쟁으로 유럽이 5년 만에 두 번째 석유·가스 가격 위기에 직면한 점을 들어 대체 화석연료 공급에 더 무게를 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새로 개발한 북극 천연가스가 시장에 공급되기까지는 수년이 걸릴 전망이다. 세계자연기금(WWF)은 지난달 발표한 분석에서 인프라 부족과 가용 자원 규모, 역내 안보 우려를 고려하면 북극 가스가 2040년 전에는 어떤 형태로든 유럽에 도움이 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2040년은 EU가 1990년 수준과 비교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90% 줄이겠다고 약속한 시기다.

EU의 새 북극전략은 안보·회복력 강화와 나토 공조, 케이블 감시·보호를 추진 과제로 제시했다. 동시에 재생에너지와 지속 가능한 광물자원 개발을 지원하고 유럽 인프라를 북극 무역·운송망에 연결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북극 신규 석유·가스 개발을 금지하는 다자간 법적 의무 제안은 새 전략에 포함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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